11. 영어 동화를 읽으며 엄마와 함께 실력 다지기
원희가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다 보니 읽을 책이 부족하지 않게 대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선생님이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좋은 도서를 빠트리지 않고 챙겼고 틈틈이 서점을 돌아보며 좋은 책을 한 권 씩 사다 주었다.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내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 읽히기도 했다. 가끔씩 아이들과 함께 책방을 구경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고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원희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원희를 데리고 서점에 갔다.“엄마, 밤비다!”그날 원희를 유혹한 책은 <아기 사슴 밤비>였다. 월트 디즈니사에서 나온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어로 쓰여 있고 오디오 테이프까지 딸려 있었다.“어, 영어네. 요거로 영어 공부해 보면 좋겠는걸.”난 이때다 싶어 그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희는 이 책을 너무 좋아했다. 밤비가 깜찍하고 귀여운 데다가 숲 속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손에 들고 놓지를 않았다.One beautiful spring morning a little rabbit named Thumper woke Fiend Owl with some wonderful news. A baby deer had been born deep in the woods. 아기사슴밤비 (출처 : 디즈니) 원희는 큰 소리로 한 단어 한 단어 읽어 내려갔다. 뜻은 몰라도 대충 어떻게 소리나는지 흉내는 낼 수 있으니까 여기저기 틀리면서도 제법 소리를 내서 잘 읽었다. 그런데 두 페이지 정도를 그렇게 읽더니 점점 흥이 없어지면서 소리가 작아졌다.“엄마, 그만 읽을래.”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내가 직접 읽어주기 시작했다. 어릴 때 우리말 동화를 읽어주던 것처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영어로 읽고 우리말로 해석해주었다.그런데 이번에도 원희는 크게 신이 나 하지 않았다. 원희는 자기가 싫다고 엄마 말을 그 자리에서 거역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냥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기는 한데 내 말을 잘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내용이 어려운 것은 그림만 보고 나서 더 이상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봐도 그냥 재미로 읽기에는 내용이 쉽지가 않았다. 스토리 내용이나 그림으로 보면 꼬마용이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하며 읽기에는 영어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나는 책 속의 문장을 일일이 읽어주는 것은 포기하고 오디오 테이프만 들려주었다. 책은 보고 싶을 때만 보도록 했더니, 아이가 오디오를 들으면서 그림을 계속 들여다봤다. 의외로 아이가 굉장히 흥미로워 했다. 테이프에서 책을 읽어주는 여자의 목소리가 감정이 굉장히 풍부하고 경쾌해서 아이들을 쏙 빨아들일 듯했다. 원희도 재미있는지 잘 들었다.그러더니 한참 후에는 “A new prince is born!(새 왕자가 태어났어요!)”, "The forest is on fire!(숲 속에 불이 났어요!)“ 같은 말들을 따라서 했다. 내레이션 보다는 대화, 그것도 기쁨이나 놀라움 등이 담긴 말을 먼저 배웠다. 전부 다 무슨 말인지 알고 따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때는 오디오의 내용과 1초도 틀리지 않고 리듬까지 맞추어 톡톡 내뱉었다. 모든 이야기의 소리 자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흐름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가끔씩 책을 펴놓고 듣는 것을 보면 오디오에서 어떤 부분을 말하고 있는지 잘 아는 것도 같았다. 난 너무 신이 나서 그 시리즈의 다른 책도 사주었다.<신데렐라>,<미운 오리 새끼>, <아기 돼지 삼형제> 등 내용은 이미 원희가 읽어서 알고 있는 책들이었다. 굉장히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는데 다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원희는 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너무 욕심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에 20분 정도씩 규칙적으로 조금씩만 들려주는 것으로 만족했다.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오디오 테이프를 들려줄 때 책을 꼭 함께 보게 했다. 그러면서 소리가 들리는 부분을 책에서 손으로 짚어 내려가게 했다. 딱딱 맞추지는 못했지만 대화 부분, 짧은 문장, 감탄사 등이 있는 부분에 가서는 정확히 어딘지 파악을 하고 있었다.“ 어머, 얘 왜우니? 여기 뭐라고 쓰여 있나 보자.”아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원희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한테 설명을 해준다. 자기가 읽은 대로, 자기가 생각한 대로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모르는 단어가 많고 내가 보기에는 구문도 아주 복잡해 보이는데 어떨 때는 놀랍게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한 원희는 조금 짐작하는 것을 가지고도 그럴듯하게 엮어 내고, 잘 모르는 경우에는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마구 지어내기도 했다.이쯤 되면 아이들 상상력을 키우는 데도 그만인 학습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유튜브 무료 영상콘텐츠를 활용해보세요 (출처 : 유튜브 '아람' 채널) 한참 그런 식으로 책을 읽혔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까 나도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내용만 비슷하게 짐작하는 상태로 계속 책을 읽히는 것이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문장을 이해하며 책을 읽히고 싶어서 결국은 좀 쉬운 책을 골라 소리 내어 한 줄씩 같이 읽었다. 한글 동화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연기력을 살리고 제스처를 크게 쓰면 더 집중해서 들었다. 내가 한 줄 읽으면 원희가 무슨 뜻인지 말하고, 원희가 영어로 한 줄 읽으면 내가 우리말로 설명하고, 이런 식이었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영어를 읽을 때 감정을 듬뿍 넣으면 원희는 우리말에도 감정을 뜸뿍 실어 해석을 했다. 원희가 제스처를 크게 써서 영문을 읽으면 나도 큰 제스처를 써 가며 해석을 했다. 그러다 보니까 흥이 날 때는 누가 더 재미있게 읽나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아이구, 이거 원맨쇼를 하네.’솔직한 심정으로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쉽지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엄마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난 원희에게 영어 한마디 건네는 것이 참 어려웠다. 원희한테 회화 한마디라도 가르치고 싶어 말을 걸 때면 틀리는 영어를 하거나 말을 더듬고, 사실 미리 예습까지 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난 동화 읽기 지도는 아주 쉬울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어책 읽는 것은 나도 꽤 해 봤고 더구나 아이들이 읽는 동화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해 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결국은 내가 읽어줘야 하니까 발음도 신경이 쓰였고 내가 읽는 것이 너무 밋밋해서 아이가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다. 아이들 책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모르는 단어도 은근히 많았고, 솔직히 정확히 해석이 되지 않는 문장도 꽤 있었다. 이런 것들은 사전 예습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없을 때 사전을 보고 단어를 찾거나 발음을 외워 두고 해석이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남편에게 물어봐 확인해 두기도 했다.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집에서 틈틈이 이것저것을 공부하더니 원희는 4학년 무렵에 영어를 제법 했다. 학원에서 리딩 교재를 선택해 선생님하고 읽기도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즈음부터 오디오가 딸리지 않은 책, 그림이 많지 않은 책도 조금씩 읽게 했다. 그렇게 한참 하다 보니까 원희가 동화책에 상당히 취미를 붙이는 것 같았다.5학년 때부터는 재미있는 영어책이 있으면 읽고 나서 영어로 독후감을 쓰게 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쓰기를 어려워 할 때는 동화 속에 나오는 영어 문장을 많이 인용해서 그대로 쓰게 하니까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자기 생각이나 느낌까지 담아서 독후감을 쓸 만큼 실력이 쌓여 갔다.나는 적어도 영어 동화만큼은 원희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 읽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원희가 영어책도 자유롭게 읽어서 외국의 아이들이 배우고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고 보다 큰 세상을 헤엄쳐 다니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좋다는 책을 꽤 사다 읽혔다. 하지만 영어책 읽기를 통해 독서 본연의 효과를 얻는 것은 결국 원희가 초등학교 때는 이루지 못했다. 아이가 커 가면서 보니까 아이의 정서나 지적 수준은 5학년, 6학년인데 읽을 수 있는 영어책은 미국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다. 나중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사전을 찾아가면서 꽤 수준 높은 책을 읽혀 보기도 했지만 원하는 만큼 영어책을 읽지는 못한 것 같다.중학생이 되고 나서는<이노크 아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제인 에어> 등의 세계 명장을 주로 읽게 했다. 무엇보다 문학 작품을 다양하게 읽는 재미가 잇었다. 하지만 이것은 번역이 딸려 있고 어떤 것은 오디오도 딸려 있어서 학습용의 성격이 강했다.결국 원희는 나중에 고등학교에 가서 미국의 고등학생 또래가 읽는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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